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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필쓰기 스크랩 1회
작성자 : 장희숙(wkdgmltnr123)
등록일 :
조   회 : 164
스크랩 : 1
행복한 수필쓰기

- 체험의 문학인 수필쓰기를 중심으로 -

                                                                                                                                                                                                                                                                 김 학



􄦛 프롤로그

수필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반백년이 넘었고, 《월간문학》에서 수필가로 등단한 지도 37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지금까지《수필아, 고맙다》,《나는 행복합니다》《쌈지에서 지갑까지》등 수필집 14권과 수필평론집《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2권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쓸 때는 <행복한 글쓰기>가 아니라 <괴로운 글쓰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글을 문예지에 발표할 때는 행복했고, 또 원고료를 받으면 더 기뻤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글로 문학상과 상금까지 받으면 더더욱 행복했습니다. 그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행복한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체험의 문학인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의 수필쓰기체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나는 늘 초심으로 돌아가 수필을 쓰고 싶습니다

􄦛 수필과 나의 인연

나는 1962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아웃사이더의 사랑이야기>란 수필을 써서 대학신문에 발표한 이래 무려 55년 동안 이만큼의 수필을 썼으면 지금쯤 도가 터서 누가 제목만 던져 주면 거미꽁무니에서 거미줄이 나오듯 술술 단숨에 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처음 글을 쓸 때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내가 지진아遲進兒여서 그런지, 아니면 수필쓰기란 원래가 그런 것인지 아리송할 따름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수필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지금과 사뭇 다른 여건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수필의 이론과 창작실기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도 없었고, 또 수필이론서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서 배운 수필공부가 전부였고, 선배들이 발표한 수필작품을 읽으면서 어깨너머로 익혀야 했습니다. 등불도 없이 어두운 동굴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선배들의 작품을 읽고 흉내 내기를 되풀이하면서 수필작법을 스스로 터득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문학이론보다는 경험을 스승처럼 여기면서 수필을 써왔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었기에 나는 최근에 문단에 얼굴을 내민 신진 수필가들이 한없이 부럽고 또 두렵습니다. 그래서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요즘에는 누구나 형편이 나아졌으니 좋은 수필집을 얼마든지 구해서 읽을 수 있고, 다양한 수필이론서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수필이론을 독학할 수도 있으며, 또 전국 방방곡곡의 대학교 평생교육원을 비롯하여 문화원과 도서관, 백화점, 복지관 등 곳곳에서 문학강좌를 열고 있으니 문학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 수필소재와의 만남

나는 수필의 소재를 내 생활주변에서 찾습니다. 나의 갖가지 체험은 물론이요, 신문이나 잡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까지도 나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해 줍니다. 그 소재가 내 눈에 띄는 순간, ‘이것으로 수필 한 편 써야겠다.’ 싶으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그런 창작태도가 이제는 버릇이 되었습니다.

처음 수필집을 한 권 내고나니 이제는 소재가 없어서 더 수필을 쓸 수 없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모두 수필의 소재라더니, 수필소재를 알아보는 눈만 있다면 우리 주변에는 수필감이 무한대로 널려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수필은 문장으로 엮는 문학입니다. 때문에 수필가라면 제대로 문장을 엮어갈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글맞춤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뒤지니 <한글맞춤법>과 <한글누리집> 등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맞춤법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소재로 요리한 수필일지라도 단어표기, 띄어쓰기, 어법, 어순, 문장부호 등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잘 쓴 수필이 될 수 없고, 그런 작품은 독자를 감동시키지도 못할 것입니다. 특히 문장부호는 그 용법을 알고 정확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특히 말줄임표(……)는 가운뎃점 6개를 찍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운뎃점 대신 마침표(.)를 찍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규정이 바뀌어 지금은 가운뎃점이나 마침표를 찍어도 괜찮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물음표(?)나 느낌표(!) 다음에 또 마침표(.)를 나란히 찍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음표나 느낌표도 엄연히 하나의 문장부호인 만큼 그 뒤에 마침표를 더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수필가는 과학자들처럼 항상 물음표(?)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 버릇을 지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같은 소재일망정 수필가 나름의 독창적인 해석이 가능한 수필을 쓸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耳目口鼻, 眞善美貞淑賢, 東西南北, 梅蘭菊竹, 身言書判, 仁義禮智信 등 한자숙어를 보면서 왜 한자의 배열순서를 그렇게 고정시켰을까 따져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오랜 관행이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왜 순서가 그렇게 되었을까, 그 순서를 바꾸면 어떨까?’ 생각해 보며 어순을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나는 수필을 쓸 때 내 나름대로 정해둔 수필쓰기 <5단계 전략>이 있습니다.

*주제선정 - *관련소재 모으기 - *틀 짜기 - *원고 쓰기 - *글다듬기

수필의 주제가 결정되면 그 주제와 연관된 소재들을 최대한 모읍니다. 내 기억 속의 소재들도 징발하고, 참고 서적이나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관련 소재를 최대한 모읍니다. 열 가지든 스무 가지든 자료를 모아 메모를 한 뒤, 활용가치가 높은 소재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립니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한 편의 수필을 씁니다. 좋은 주제를 만나 그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기도 하지만, 반대로 참신한 소재를 만나 그 소재에서 주제를 추출해 내기도 합니다.

􄦛 나의 글다듬기 방식

나는 글을 다듬을 때마다 윤오영 선생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그 노인의 방망이를 깎는 태도가 바로 수필가에게 수필 다듬기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그 노인은 기차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방망이를 달라고 재촉하는 소비자에게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느냐며 나무랍니다. 그래도 어서 달라고 재촉하자 안 팔 테니 다른데 가서 사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소비자는 왕이라는데 방망이 깎던 노인은 그 왕 앞에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셈이니 얼마나 꼬장꼬장한 장인匠人입니까? 그 방망이 깎던 노인의 태도야말로 수필가는 물론 모든 예술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필가라면 모름지기 이 방망이 깎던 노인에게서 진짜 수필가로서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청탁원고 마감에 쫓겨서 허둥지둥 원고를 마무리하여 보내는 수필가라면 그 노인의 태도를 보고 무엇인가 크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글을 다듬을 때 밤에 쓴 수필은 낮에, 비나 눈이 내릴 때 쓴 글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다시 읽어 보며 글을 다듬습니다. 날씨와 분위기에 따라 내가 너무 감상에 치우쳐 쓰지 않았는지 검토하고자 그런 것입니다. 나의 글다듬기는 며칠 또는 몇 주일,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나는 글을 다듬을 때마다 제목과 서두, 내용, 결미까지 꼼꼼히 읽으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갑니다. 이 단어를 더 쉬운 우리말로 바꿀 수는 없을까, 토씨를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뿐 아니라 한 글자라도 더 줄일 수는 없을까 궁리합니다.

한자말이나 외래어는 가능한 한 우리말로 바꿉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의 번역문투 문장이 우리말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위하여’란 어휘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어휘는 영어 ‘~for + 명사(동사 + ing, to + 동사원형)’을 번역한 어투지 순수한 우리말의 어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 어휘를 순수한 우리말로 알고 즐겨 사용합니다. ‘~위하여’를 ‘~하고자’ ‘~하려고’ 등으로 바꾸면 자연스러운 우리말투가 됩니다. 또 ‘~후’자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는 한자 ‘後’자를 뜻하는 한자인데 한문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한글세대까지도 무의식중에 이 글자를 사용합니다. ‘後’자를 우리말로 바꾸면 ‘뒤’입니다. 그런데 버릇처럼 순수한 우리말 ‘뒤’자는 ‘後’자에 밀려나고 있습니다. ‘아침밥을 먹은 뒤’라고 표현하면 좋을 텐데 ‘아침밥을 먹은 후’라고 쓰면서도 그것이 한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원고를 마무리 지은 뒤 글을 다듬을 때는 단어 하나하나를 읽어가면서 그 단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한 모두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우리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쓰임새가 높은 글인지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작품을 손질하고 나면 초등학교 5,6학년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친근한 수필로 바뀔 것입니다. 그래야 수필가를 우리말 지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 수필가는 조물주와 동격

수필가는 조물주와 동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무생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존재로 바꿀 수도 있는 게 수필가입니다. 길가에서 만난 돌멩이, 창고에서 만난 괭이나 낫에게도 목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게 수필가란 말입니다. 그러니 수필가의 권능이 조물주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 반대로 수필가는 살아있는 생물체에게서 목숨을 거두어 무생물처럼 다룰 수도 있습니다. 수필가는 모름지기 무소불위의 권능을 가진 글쟁이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허투로 남용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펜을 멋대로 휘둘러서는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나는 의미심장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유명한 전남 화순의 운주사에 들른 신혼부부의 대화에서, 건축가인 신랑이 신부에게 돌부처를 설명하면서, 불상佛像은 석공이 돌을 쪼아서 조각한 게 아니라 바위 속에 숨겨진 불상을 찾아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멋진 말을 들으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수필은 수필가가 수필소재를 찾아서 문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수필가가 수필소재 속에 숨겨진 수필을 찾아내는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붓 가는대로 쓰는 게 수필이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수필이며, 형식이 없는 게 수필이라고들 합니다. 그렇게 말장난을 하니까 여태까지 수필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수필쓰기도 더 어려워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필이란 게 일정한 틀이 있다면 19공탄 찍어내듯 하면 될 텐데 그럴 수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도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수필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수필을 나의 반려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는 항상 남의 좋은 수필을 탐독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하루 세끼 밥을 먹듯 최소한 하루 세 편의 수필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수필을 쓸 수 있는 한 앞으로도 나는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어깨너머 공부와 요즘의 수필공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아는 것이 병이요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수필쓰기 초년병 시절 나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4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수필 이론서가 거의 없었고, 수필을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지방은 물론 서울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깨너머로 수필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배들이 발표한 수필작품을 읽으면서 스스로 수필을 쓰는 요령을 터득해야 했습니다.

제목붙이기, 서두쓰기, 내용전개, 결미쓰기를 눈여겨보면서 하나하나 익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익히는 속도가 더딘 것은 당연했습니다. 수필쓰기에 대한 이론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전국 방방곡곡 어느 곳에서나 수필을 배울 곳이 많습니다. 대학교 평생교육원을 비롯하여 문예지, 신문사, 백화점, 자치센터, 문화원, 노인복지관 등에 많은 문학공부방들이 있습니다. 배우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으니 지금은 수필공부 하기에 아주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 수필의 길이

수필의 길이가 200자 원고지 몇 장이어야 한다는 명문규정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선구자 윤오영, 피천득 선생의 수필은 원고지 5~7매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짧은 수필인데도 얼마든지 깊이와 아름다움을 담지 않았습니까?

수필쓰기 초심자들은 처음엔 원고지 5매를 채우는데도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습작기간이 길어지고 창작능력이 향상되면 자꾸 원고길이가 길어집니다. 원고지 20매를 훌쩍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글을 다듬으면서 잘라내라고 권하지만 아까워서 스스로 싹둑싹둑 가위질을 하지 못합니다. 그럴수록 과감하게 잘라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군더더기를 꼭 잘라 주어야 합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입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긴 수필보다는 짧은 수필을 좋아합니다. 컴퓨터 화면 하나에서 읽을 수 있으려면 원고지 5매 정도가 알맞습니다. 그걸 장편수필掌篇隨筆이라고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서도 원고지 5매 소설이 나오는데 그것을 일컬어 미니픽션Mini Fiction이라고 합니다. 소설도 그렇게 짧아지는데 수필이 어찌 길어야만 하겠습니까?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시나 소설은 그 범주가 넓고 큰데도 그 길이에 따라 가르지, 내용의 무겁고重 가벼움輕이나 부드럽고軟 딱딱한硬 것으로 나누지는 않습니다. 소설은 내용과는 상관없이 길이에 따라 콩트, 단편, 중편, 장편, 대하소설 등으로 나누지 않습니까? 수필도 이제는 내용에 따라 분류하지 말고 길이에 따라 분류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 수필의 구성

수필의 길이가 짧던 길던 상관없이 제목과 서두, 내용, 결미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네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 없어도 그걸 수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들 네 가지 가운데 독자가 맨 처음 만나는 것이 제목입니다. 제목은 독자의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좋습니다. 문예지나 동인지를 받으면 먼저 목차를 펼쳐 봅니다. 그 목차에서 내 작품이 없다면 아는 분들의 작품을 찾고, 그 다음에는 좋은 제목을 골라 읽습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책을 펼치면 그 작품의 서두와 만납니다. 그 서두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책을 덮거나 다른 작품으로 건너뛰게 됩니다. 수필의 서두 몇 줄이 그 작품의 성패를 결정짓는다는 말에 귀를 기울일 일입니다.

수필가는 독자가 한눈팔지 않고 끝까지 읽도록 자기 수필에 문학적 장치를 해야 합니다. 텔레비전 일일드라마가 어떻게 시청자로 하여금 다음날 또 보고 싶도록 유도하는지 배울 일입니다.

방송에서는 ‘30초 전쟁’이란 말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면 30초 안에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30초는 아나운서가 200자 원고지 한 장을 읽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패러디하면 수필 역시 ‘30초 전쟁’일 것입니다. 200자 원고지 안에는 제목과 서두가 들어갑니다. 수필독자는 제목과 서두를 읽어 보면 더 읽을 것인가 다른 작품으로 옮겨갈 것인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수필도 역시 30초 안에 독자를 사로잡아야 합니다.

내용 전개 역시 독자가 지루한 느낌을 받지 않고 그 작품에 빠져들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또 알아 둘 게 있습니다. 너무 평범하다 보면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고, 감동을 주지 못하면 그 작품은 문학으로 대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내용은 금물인 것입니다. 결미는 서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결미는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쓰면 좋을 것입니다. 수필의 결미는 그렇게 끝내야 합니다.

􄦛 수필의 문장

수필의 성패는 그 문장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일찍이 허세욱 교수는 수필의 문장은 원고지 위에 설지언정 누워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말[言]은 말[馬]처럼 서서 달릴 수 있는 자세라야지 누워서 잠을 청하는 자세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사나 형용사 등 묘사를 위한 서술어가 많을수록 문장이 서서 달리지만, 명사나 부사 등 개념을 집합한 논리체가 많을수록 문장은 동맥경화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수필의 문장은 서술인데 이를 두고 형상形象이라 했습니다.

어떤 수필가는 수필문장에서 지름길을 두고 빙 에둘러 가는 표현을 사용하는 수가 있습니다. 한 글자라도 더 줄일 수 있으면 줄여야 하는 게 수필의 문장입니다. 그건 언어의 경제학입니다. 수필의 문장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수필의 문장은 작가가 어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릅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활용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한자말은 가능한 한 모두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어야 하고, 외래어 역시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문장을 엮을 때 번역문 투인지 아닌지 잘 살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번역문인지 아닌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필문장을 엮을 때 토씨[助詞]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리듬을 살리려면 토씨를 넣어야할지 빼야할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토씨를 넣을 곳에서 빼고, 뺄 곳에서 넣는다면 마치 학교 앞 도로의 턱을 만들어야 할 곳에 턱을 만들지 않고, 없애야 할 곳에 턱을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토씨에는 주격토씨와 목적격토씨가 있는데, 주격토씨에는 ‘이’ ‘가’와 ‘은’ ‘는’이 있고 목적격 토씨에는 ‘을’과 ‘를’이 있습니다.

􄦛 수필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자세

수필에 관심을 갖고 있던 분들이 수필공부방을 찾기 마련입니다. 직업일선에서 물러나 이모작 인생을 시작하며 소년소녀시절의 꿈인 문학을 찾아 나선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들 중에는 처음부터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작품이 서툴지만 꾸준히 노력하니 발전 속도가 빠릅니다. 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수필이론을 모르니까 그냥 버릇대로 수필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점점 수필이론을 알게 되면서 두려워져서 수필쓰기 속도가 느려집니다. 이들은 아는 것이 병이라면서 쉽사리 다시 붓을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필은 쓰지 않지만 열심히 강의실에 나와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대박을 터뜨릴 듯 진지한 자세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귀 명창으로 한두 학기를 보내고서도 결국 수필을 한 편도 쓰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잘 쓰든 못 쓰든 열심히 수필을 쓰는 수강생이 좋습니다. 어떤 분은 어김없이 매주 한두 편의 수필을 쓰는 이들도 있습니다. 70대 중반의 어르신도 그처럼 진지하게 수필에 접근하더니 1년 만에 등단의 관문을 통과하고 해마다 수필집을 펴내7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신 80대 초반의 어르신도 있습니다. 또 83세에 신춘문예에 도전하여 당선의 영광을 안은 할머니도 있습니다. 운동경기에서도 열성적인 연습벌레가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듯 글쓰기 공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글을 쓰면서 스스로 문리를 터득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시나 소설은 그 범주가 넓고 큰데도 그 길이에 따라 가르지, 내용의 무겁고重 가벼움輕이나 부드럽고軟 딱딱한硬 것으로 나누지는 않습니다. 소설은 내용과는 상관없이 길이에 따라 콩트, 단편, 중편, 장편, 대하소설 등으로 나누지 않습니까? 수필도 이제는 내용에 따라 분류하지 말고 길이에 따라 분류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수필가는 모름지기 시인이나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등 다른 어느 문인보다 더 철저한 한글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제대로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게 바로 수필가들의 임무려니 싶습니다. 이 세상에는 6,500개 언어가 있고, 그 언어 가운데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400개라고 합니다. 유네스코가 이 400개 문자 가운데 문자가 없는 6,100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문자를 가르치면 좋을지 연구한 결과 우리 한글이 1위로 뽑혔답니다. 이런 한글을 우리 수필가들이 갈고 닦고 지키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수필은 문학의 용광로입니다. 수필이란 용광로에 시를 넣으면 서정수필이 되고, 소설을 넣으면 서사수필이, 평론을 넣으면 비평수필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21세기에는 수필이 모든 문학 장르를 아우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헛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 에필로그

나는 내 수필이 전주비빔밥 같기를 바랍니다. 시각적, 미각적, 영양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수필이 뜨거운 가슴으로 써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정의 미학인 내 수필이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수필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문학이기를 바랍니다. 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봄으로써 나의 편벽된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써지는 글이 아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내 수필이 생활주변의 소재로부터 세상만사를 아우를 수 있는 글이기를 바랍니다.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모두 수필의 소재이니만큼 수필의 영토를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확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수필이 초등학교 상급생들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이면 좋겠습니다. 수필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장희숙(wkdgmltnr123) 님께서는 아직 인사말(서명)을 등록하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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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상하신 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회장님..
[] 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 근사한 서울 나들이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좋습..
[] 좋은 정보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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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형상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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