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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인가? 스크랩 2회
작성자 : 이제호(galaxy5909)
등록일 :
분   류 : 수필/소설
조   회 : 437
스크랩 : 2

복음이란 무엇인가?



 

오래전부터 진리를 추구해온 사람으로서 2011년에 접한 복음은 내 인생의 모든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찬송가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복음 중에 복음은 예수 구원하신다.”

복음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복음을 알고 믿게 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인가? 이 질문에는 성경의 다음 구절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5:24)

 

예수님이 하신 위의 말씀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위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베데스다 못에서 삼십 팔 년 동안 병들어 있었던 사람을 치유해 주신 일이 있었다.

당시 베데스다 못에서는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병자들이 이 못 주변에서 못의 물이 움직이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못물을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간 사람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베데스다 연못에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병자를 보시고 말씀하신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병자는 대답한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다 밀어 넣어 줄 사람이 없나이다. 그래서 내가 가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 내 앞에 내려가나이다.”

병든 그 사람은 기운이 없음으로 선착순으로 연못에 내려가야 하는 경주에 늘 뒤처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적을 경험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향해 말씀하신다.

일어나서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즉시 자기 침상을 들고 걸어갔다. 그의 오랜 병이 치유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기적이 안식일에 일어났다는 것을 보고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유대교는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에게 죽음을 선고했다.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들의 율법이었다. 그 율법을 어긴 예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불경한 자였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서슴지 않고 선언한다.

나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노라. 아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어 친히 하신 모든 것들을 그에게 보여 주심이며, 또 그분께서는 이보다 더 위대한 일들을 보여 주시리니 이는 너희로 놀라게 하려 하심이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나니, 이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을 존경하게 하려 함이라. 그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것이라.”(5:19~23)

일이 이쯤 되니까 유대인들은 그를 더욱 죽이려고 했다. 그가 안식일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직접 오셔서 사람의 모든 죄를 대신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그 해결자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한 것을 불경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는 진실로 선언한 것이다. 그분은 진실로 진실로..”라고 거듭 강조하며 선언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이며 너희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임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생이란 선물을 받은 자들이다. 복음은 이런 것이다. 복음은 이 세상의 어떤 재물로도 살 수가 없는 값진 것이다. 내가 언젠가 막내 형에게 복음을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자 막내 형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만일 사실이라면 몇 조를 주고도 살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모기업 총수는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젊은 사람의 피를 수혈 받았다고 들었다. 자신의 늙은 피를 전부 젊은 사람의 피로 교체한 것이다. 그가 돈이 많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육체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였어도 그는 원하는 만큼 장수하지 못했다.

진시황제의 얘기도 들었다.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서 부하들을 고생시켰다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 불로초를 구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설사 구했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늙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의 생애는 오히려 그렇게 길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육체를 지닌 인간의 한계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육체에 매달려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육체는 생로병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누구나 태어나면 늙어 죽게 되어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하신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수명이 있고 늙어서 죽게 된 이유는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던 선악과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일을 통해서 사람에게는 죄와 사망이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처음에 아담을 지을 때, 어떤 존재로 지었다는 말인가?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면 육체를 지닌 존재로 죽음을 모른 채,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다. 진시황이 그토록 원했던 모습이 바로 죄를 짓기 전의 아담의 모습이다. 모기업 총수가 그토록 원했던 육체의 회복도 아담에게는 필요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최초의 사람 아담은 완전한 사람이었다. 창조주 안에서 창조주와 똑같이 영원히 사는 존재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보이지 않는 분이시지만, 아담은 보이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지어진 완전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의 길로 떠나버린 것이다. 이런 불행한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자유의지적인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설계하신 까닭을 묻는 사람이 있다. 처음부터 범죄 하지 않도록 설계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하고 되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다시 묻는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드셨다면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그것은 사람이 컴퓨터처럼 아니면 로봇처럼 만들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자유를 존중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아닌 다른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행위, 곧 우상숭배를 하나님은 극도로 배척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이 누구나 하나님을 섬기도록 강제적으로 만들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 창조된 것이 사람이다. 사람은 질투하고 욕심을 내며, 사랑도 하지만 복수도 꿈꾸는 존재이다. 이것이 창조주의 모습이기도 하다. 글자그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인 것이다. 그러면 질투하는 하나님이 나쁜 것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질투로 인해서 발생하는 강력사건을 보게 된다. 질투는 과연 나쁜 것인가? 질투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무관심한 사람은 질투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소유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질투의 감정이 생길 수 없다. 그렇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질투의 감정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질투하는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놀라우신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의 제한적인 마음에 질투하는 하나님이 불편한 것이다. 어떻게 우주를 운행하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질투라는 사소한 감정을 지닐 수 있는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은 질투하신다. 사람이 자신만을 경배하도록 원하시나, 그 사람이 자신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할 때에, 하나님은 질투하시고 분노를 나타내신다. 구약 시대에 이런 여호아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이런 하나님의 감정이 악한 것일까?

하나님은 선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을 베푸신다고 하는데, 질투하고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이 모순된 감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투하는 하나님을 보며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모든 것을 허용하고 마음껏 욕망하고 마음껏 미워할 수 있도록 허락한 사탄을 숭배한다. 사탄은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할 수도 있게 만들고, 마음껏 미워하게도 한다. 마치 절대적인 자유를 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엄밀하게 그 내면을 들여다보라. 사탄이 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반면에 하나님이 주는 것은 오직 나만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악과 선을 동시에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네가 악을 택해서 사탄이 주는 타락의 길을 선택하든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참 경건의 길을 선택하든지, 모든 선택은 네 자유의지에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사탄은 나를 선택해도 좋고, 나를 죽도록 미워해도 좋다는 식이다. 어떻게든 하나님만 경배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신다. 또 사탄의 길로 가면 틀림없이 멸망하기에 하나님의 길로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이런 권유하는 마음하고 사탄의 자유방임적인 무책임한 마음하고 비교조차 하지 말기 바란다.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질투로 인해 살인하고 불행을 자초한다. 그러나 이런 질투는 하나님의 질투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원하신다. 다른 경우엔 가차 없이 미워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방식이 못 마땅한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용납이 안 되는지 알아야 한다.

 

동산의 모든 열매를 먹어도 되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절대로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이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면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는 사랑과 질투가 다른 개념이 아니다. 사랑 안에 질투가 있고 질투가 곧 사랑의 표현이 된다. 분리가 없는 동일한 감정으로 그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감정의 근원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길로 분리되어 떠나버린 사람에게는 사랑은 선으로, 질투는 악으로 분리가 되어 진다. 바로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보고 수치를 느낀다. 선악과를 먹고 난 이후에 생긴 수치심이라는 감정이다.

그들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라고 선악과 먹기 이전의 두 사람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을 상기해 보자. 결국 선악과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져왔다. 자기가 재판관이 되고, 나를 포함해서 타인과 모든 생물세계를 판단하는 분리의 가치관을 끌어왔다. 사탄이 원한 것이 바로 그런 분리이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하나님의 보좌 보다 더 높이 앉기를 원했던 천사다. 그런 사탄은 피조물인 사람에게 접근하여 하나님과 일체가 된 완전한 사람의 자리에서 자기처럼 저주 받은 마귀로 사람을 추락시켰던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는 태어남과 동시에 사탄의 자녀가 되어 있다.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녀인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떠한 분리도 분별도 없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어둠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살고 있으니, 우리가 소위 악하다고 분별하는 악한 어둠의 행위를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모든 선한 일속에서 행동의 제약이 없고, 모든 것과 화친하고 모든 것과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왕국의 모형으로 물질세계에 동일한 낙원을 만드신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속임수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떠나는 범죄에 빠졌고 결국 물질세계는 저주를 받고 말았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기후까지도 저주를 받아 자연세계가 거칠고 험악해져 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저주를 그냥 보고만 있으신 것이 아니라, 곧바로 사람을 구원할 두 번째 아담의 출현을 약속해 주신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다.

 

두 번째 아담은 저주받을 아담이 아닌 구원하고 회복시킬 아담이다. 그분이 붓다면 불교에 구원이 있고, 우리는 당연히 붓다를 믿어야 할 것이다. 그분이 마호메트이면 마호메트가 구원자가 되어야 마땅하며 이슬람교를 믿고 구원을 얻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다른 구원의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 때문에 우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폐기된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인터넷 뱅킹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폐기된 공인인증서는 본래 인증서가 가지고 있는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에 구원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뿐이다. 그들은 효력이 있는 공인인증서를 이미 확보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다른 것으로는 구원의 문을 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탕아와도 같은 자연인들에게 참된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리에서 외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 하나님이 지으신 두 가지의 극단적인 세계가 바로 천국과 지옥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를 피조물인 인간의 생각으로 있느니 없느니 논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 이 세상을 일순간에 융단을 말아서 거두어들이듯이 우주 전체를 오늘밤에라도 도말해 버릴 수가 있다. 그분이 펼치셨음으로 거둘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전능자가 하신 일에 대해서 사람의 얕은 생각으로 그분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분이 계획하고 이루신 일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복음을 알고 복음 안에서 살아가며 언제나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잠이 든다. 내일은 새로운 우주의 시작이다. 복음 안에 있다면 내일은 복된 하루이며, 생애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련 없이 오늘을 최후의 날로 알고 또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질 수 있는 내일로 여기면서, 오늘에 내 삶을 전부 걸어놓고 사는 것이다. 복음이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사람에게 복음이라는 선물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셨다. 이 복음을 알고, 믿으면서, 복음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어도 아무런 두려움과 후회가 없다.

오늘 눈을 감는다 해도 영원히 죽지 않을 영혼은 눈을 뜰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나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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