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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길 스크랩 3회
작성자 : 물방울 유태경(qaqa1126)
등록일 :
분   류 : 수필/소설
조   회 : 619
스크랩 : 3

유 태 경

사람 사는 곳에는 길이 있다. 집과 집 사이에,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다. 하늘에도 비행기의 길이 있고 바다에도 배가 다니는 길이 있다. 배움에도 길이 있고 성공, 행복, 불행한 삶에도 길이 있다. 바른길, 구부러지고 험한 길도 있고 세 갈래, 네 갈래, 다섯 갈래인 길도 있다.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기에 행복의 길로 잘 찾아 출발해야 한다.

삶이란 길을 가는 것이다. 편안하게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안락한 종착역을 찾아가고 있는 길이 바로 삶이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 길을 걷고 있다. 가다 힘들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정류장을 찾아 쉬기도 하고 편히 누워 잠도 자며 날이 새면 일어나 또 길에 선다.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또 길에 올라 어디로인가 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이민 생활 15년 만에 꿈에 그리던 가게를 샀다. 시작한 지 3개월이나 되었을까? 어머니가 저 세상 길로 가셨다는 한국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서둘러 가게를 닫는데 문을 고장이 났는지 잠기지가 않는다. 아니다. 가게가 나를 다른 길로 가지 못하도록 잡는 것이다. 다녀오면 다시 열 수 없을지도 모르는 가게다. 장사를 포기하고 문을 닫는 가게를 샀기 때문이다. 여권 신청도 했다. 가야 한다, 아니다. 나 자신과 싸우느라 마음에 상처만 쌓인다.

나는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길을 선택하였기에 마음에 상처가 깊어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아려온다.

그동안 나는 어머니가 가셨던 험난한 보릿고개 길을 함께 걷고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기에 나는 어머니가 갔던 길로 가지 않으려고 꿈속에서나마 새로운 나의 길을 찾아 헤맸다.

나는 어머니에게 반드시 돈을 벌어 갚을 것이니 쌀 두 말만 얻어 달라고 며칠째 어머니를 졸랐다. 어느 날이다. 나의 설명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아버지와 또다시 의논했단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16세 되던 어느 봄날이다. 쌀 두 말을 받아 어깨에 메고 나의 새로운 삶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도회지라고 보릿고개가 없으랴!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으니 서울에서의 보릿고개 골짜기는 갈수록 시골보다도 더욱 험하기만 했다. 20여 년 객지 생활을 어찌 입으로 설명하랴만, 사랑하는 아내와 국민하교 2학년인 아들이 있다.

어느덧 세월은 나를 인생 중년의 문턱으로 밀어 넣었다. 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내 갈 길을 살펴보니 꿈속에서라도 또 다른 길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셋방을 전전하는 아내의 잠든 모습, 보릿고개의 대를 물려줘야 하는 천진난만이 잠들어 있는 아들의 모습에 나는 잠을 또 설친다.

서울생활도 나의 길이 아니었다. 비행기의 날갯짓을 따라 미래의 길을 찾아 영국. 브라질 등 몇 나라를 거처 미국에 도착하여 이렇게 열심히 30여 년을 살고 있다.

세월은 정직하다. 고향 떠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계절 하나 바뀜 없이 30번씩이나 빼앗겨 버리니 나는 황혼의 겨울 문턱을 이렇게 넘어서고 있다. 앞길이 구만리라던 젊은 청춘이 가는 시간, 순서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가게 뒷문을 열고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주차장에 않는가 싶더니 쓰러지면서 날개를 퍼덕이며 심하게 몸부림친다. 아마도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을 먹었는가 싶다. 보기가 안쓰러워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이다. 별안간 비둘기 떼가 몰려왔다. 몸부림치고 있는 비둘기를 에워싸고 구구구 울부짖으며 응급처치를 하는 듯 머리로 이리치고 조리치며 안타까워한다. 잠시 후, 이미 죽었다고 판단이 되었나 싶다. 마치 100미터 날아가기 경주에 총성이라도 울린 듯 동시에 다 날아가 버린다. 안타깝게 세상 떠난 비둘기만 외로이 비를 맞고 누워 있다. 별안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온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저렇게 순간인 것을, 비둘기가 밟히지 않도록 풀숲에 옮겨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쓰레받기에 담아 쓰레기통 속에 떨어지는 비둘기의 소리가 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죽는 것은 필연[必然]이다. 그것도 그들의 길이다. 구름 사이로 순간 스쳐 가는 희미한 태양 속에서 어머니가 보이는 듯하다. 마치 비둘기보다도 못한 어미구나.”라고 말씀하시는 듯하여 가슴에 상처가 아려왔다.

어제 걸었는가 싶었는데, 새 달력을 또 벽에 걸었다. 10년이 하루 같다. 60년이란 세월의 길들이 모진 폭풍과 비바람을 몰고 와 나를 시험하더니 어디로인가 훨훨 날아가 버렸다. 예전 같지 않아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린 것도 어느 날 우연히 거울에서 보고 알았다. 안경 너머로 눈 밑에 불거진 눈두덩은 남은 세월이 보이지 않아 안경 하나를 더 쓰고 있는 듯 보인다. 어느덧 60마일이 지나 75마일로 달려도 된다는 인생 고속도로의 표지판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가게 정리도 했고 추석도 다가와 아내와 고향에 다녀오기로 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예전 한국이 아닌 성 싶어졌다. 화면으로만 보았던 인천공항을 보니 마치 내가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착각에 두 어깨가 하늘에 걸려 있는 듯싶다. 30년 전 김포공항을 떠나 엘 에이 공항에 처음 도착하고 있는 듯하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의 품이 이렇게 안방 아랫목 솜이불 속처럼 포근한지 꿈속에서 헤매고 있나 싶다. 인천대교에 올라 서울로 향해 달린다. 맑은 공기, 시야에 들어오는 자연이 팔 벌려 우리를 감싸 안는다. 금메달 목에 걸고 행진하는 운동선수의 기분이 이보다 더 좋을까 싶다.

추석날 새벽 제사가 끝나고 성묘갔다. 친척이 다 모였다. 기억에 남는 분은 거의 없었다. 조카는 누구의 누구라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를 보는 시선은 한결같이 싸늘했다. 사촌 형과 동생 부부와 만났다.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한다. “뭐하느라 어머니 장례식에도 안 왔느냐? 그렇게 바빴으면 돈은 얼마나 벌어 놓았느냐?” 심지어 누님까지도 아내를 꾸짖는다. 말 한마디 못하고 고개 숙인 아내의 모습이 나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우리 내외의 설 자리가 이미 없어졌다. 친척도 잃었다. 한국도 이미 내 나라가 아니라는 느낌도 들었다. 경조사 때마다 돈은 나름대로 보냈건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늦게나마 알았다. 한 주먹밖에 안 되는 손으로 나는 무엇을 움켜쥐려 했는가? 한자밖에 안 되는 가슴에 난 무엇을 그리도 품으려 했는가? 어찌 욕심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가족 잃고 나라도 잃었는가? 죽으면 무명수의 한 벌이나마 얻어 입을지도 모르는 인생인 것을····.

부모님 산소 앞에 엎드려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섭섭한지 아무 말이 없다. 산에서 내려와 멀리서나마 다시 한 번 산소를 쳐다보며 부모님께 마음속으로 외쳤다. “어머니! 지금 나의 모습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집도 절도 없이 타국에서 떠돌이 신세가 되어 이렇게나마 찾아뵙지도 못하는 내 모습을 원하십니까?” 아무 대답이 없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인사했다.

차를 타려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쳐다보니 어머니가 손을 흔드시며, “자랑스럽다. 내 아들아! 지금 네 모습이 매우 좋다. 너는 친척도 나라도 잃지 않았다.”라고 하신다. 우리 내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 부모님 산소에 앉아 온종일 어머니와 이야기했다.

하찮은 날짐승으로만 알았던 비둘기다. 전화도 하지 않았는데 모여들어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보았다. 비둘기만도 못했던 내가 미워지면서 10년이 더 늙어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본다.

서둘러 내 나라 미국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어머니의 하늘나라 이야기 들으며 고향이 된 미국에 도착했다. 30년 전 바로 이 공항 이 자리에 내렸을 때의 활기찬 내 모습을 본다. 서서만 자라고 있는 나무들, 우리 몸에 흐르는 피도 자기만의 길을 따라 흐르듯 지구 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지금 길 위에 있다. 나는 내가 걸어왔던 길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나만의 길을 따라 어머니 찾아가 효도할 것이니 하늘나라에서나마 한번 재미있게 살아 봅시다. 새벽하늘에 떠오르는 태양 속에서 어머니가 손짓하는 듯 쏟아지는 햇살이 그들에 길을 따라 내 가슴속으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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