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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우 업(blow up) 스크랩 6회
작성자 : 이제호(galaxy5909)
등록일 :
분   류 : 수필/소설
조   회 : 525
스크랩 : 6

블로우 업(blow up)

 

한 대의 지프차에 분장을 한 사람들 스무 명이 위태롭게 올라타고, 괴성을 지르면서 도시를 질주한다. 분장한 그들은 팬터마임을 하는 친구들이다. 아무 소품도 없이 오직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들, 말도 없고 오직 몸짓의 행위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그들은 지금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처럼 혹은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격전지에서 달려온 전령들처럼 거리를 누비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들이 나타난 것은 아주 의도적인 일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팬터마임을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의 떠들썩한 등장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주인공 사진작가와도 마주친다. 사진작가는 이들이 말없이 내민 깡통 속에 소액지폐를 한 장 넣어준다. 주인공은 좋은 세단을 몰고 자신의 스튜디오를 향해가는 중이다.

그는 패션잡지에 쓸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작가이다. 그는 젊고 열정적이며,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는 여성들의 세속적인 욕망이나 허영심을 사실은 못마땅해 한다. 패션과 관련된 직업세계에서 모델의 역할을 하는 여성들은 이런 욕망이나 허영심을 갖고 살아가기 쉽다. 특성화된 직업적인 환경이 그들의 삶을 타락과 허영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관능적인 모델들을 두고 열심히 촬영 작업을 하던 그는 모든 일을 중단시킨 채,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온다. 그는 한적한 교외의 시민공원 같은 곳을 찾아간다. 사치와 허영으로 온몸을 치장한 여자들만 보다가 공원의 나무나 숲을 카메라에 자연스럽게 담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의 지겨운 일에서 해방되려는 듯 보인다.

나무와 숲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가.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여인들과 매력적인 자태를 억지로 꾸며서 보이는 여인들 보다는 나무가 훨씬 소박하고 아름다울지 모른다. 그런데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그는 한 쌍의 데이트하는 일행을 눈여겨보게 된다.

한 여인은 젊은 부인으로 보이고 데이트 상대는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이는 백발의 중년남자이다. 어디로 보든 정상적인 부부의 사이는 아닌 것 같이 보인다. 호기심을 느낀 사진작가는 그들의 데이트 장면을 몰래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이 행여 볼까봐 조심하면서 나무 뒤에서나 혹은 나무 그늘 깊숙이 숨어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두 남녀는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하면서 그들을 뒤쫓는 사진작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여자가 사진작가를 발견한다. 그녀는 미친 듯이 뛰어와서 사진작가에게 항의한다.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선 안 된다면서 필름을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호락호락 내줄 의향이 없는 사진작가는 여자가 진정하도록 타이른다.

여자는 사진작가에게 한참을 조르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데이트하던 남자의 모습을 두리번거리면서 찾기 시작한다. 그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공원 여기저기를 찾아 헤맨다. 이런 허둥대는 여자의 모습까지도 사진작가는 카메라에 놓치지 않고 담는다. 그리고 그는 공원을 서둘러 빠져나와 자신의 스튜디오로 돌아간다.

얼마 후, 공원에서 본 그 여자가 스튜디오를 찾아온다. 그는 그녀가 어떻게 이곳을 찾았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스튜디오에서 그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던 사진작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모델로써 아주 적합한 외모와 내적인 매력을 가진 여성임을 발견한다. 그는 여자에게 모델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러나 여자는 오직 필름을 되찾으려는 생각 밖에는 없어 보인다. 사진작가는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그녀의 매력을 발견하기에 여념이 없고, 여자는 어떻게든 작가로부터 필름을 뺏어서 돌아가길 원한다. 작가는 공원에서 찍은 필름은 뒤로 빼돌리고 다른 필름을 여자에게 건넨다. 여자는 만족해하면서 스튜디오를 떠난다. 사진작가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여자는 엉터리로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떠난다.

 

사진작가는 공원에서 찍었던 필름을 현상한다. 확대기를 걸어서 큰 사이즈의 인화지에 현상을 해서 사진을 벽에 붙여놓는다. 여자 혼자서 서 있는 모습이나 남녀가 함께 포옹한 모습 등을 차례로 인화하여 벽에 붙여놓고 바라본다.

사진작가는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포옹한 남녀의 모습 사진에서 여자가 건너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작가는 그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건너편 나무그늘의 배경사진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 나무 그늘은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그늘 주변 부위만 확대해서 인화해 본다.

사진을 확대해서 인화해 보니 이게 웬일인가. 그 나무 그늘 속에서 총을 든 남자의 모습이 어렴풋이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사진작가는 여자가 남자의 행방을 찾아다닐 때에 찍혔던 배경화면들을 다시 확대하여 현상해 본다. 작가의 생각 속에서 총을 든 남자가 분명 나무그늘 속에 숨어 있었다면 그녀와 함께 데이트하던 중년남자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살해됐을 가능성이 컸다.

작가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중년남자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이다. 공원의 먼 수풀 아래 희끗하게 보이는 물체가 배경화면 속에 나타난다. 너무 멀리 떨어진 피사체라서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확대된 사진 속에서 분명히 바닥에 뭔가가 희미하게 가로놓여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직감을 따르기로 한 사진작가는 그 사건현장을 찾아간다. 이미 밤은 어둡고 공원은 적막에 휩싸여 있다. 사진작가는 희끗한 물체가 찍혀있던 장소를 애써서 찾아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를 찾았을 때, 밝은 색상의 양복을 입고 반듯하게 누워있는 중년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이미 숨어 끊어져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작가는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이 사실을 상의하기 위해서 같은 업종에 있는 사업가 지인을 찾아간다. 그 지인은 저택에서 마침 많은 여자 모델들을 불러들여서 환각적인 파티를 열고 있었다. 모인 여자들은 집단으로 마리화나를 피우며 몽롱한 정신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이미 마리화나에 취한 지인을 보고 시체를 발견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지만 지인은 제 정신상태가 아니라서 그의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지인의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환각파티는 오늘 마음껏 취하고 먹고 마시면서 내일이면 죽으리라고하는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죽은 자들에게 관심조차 없다. 오늘 살아있는 내가 어떻게든 쾌락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다. 아직 내가 죽은 자의 곁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마음껏 삶을 소진한다.

그러나 분명히 그 밤에 공원에는 한 남자가 시체가 누워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진작가는 지인과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상대가 이미 대화할 상태가 못 되어 포기하고 만다. 죽은 자의 시체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지인을 보며 좌절한 사진작가는 여기저기서 권하는 술을 마시고 침대에 쓰러진다.

 

다음날 아침에 사진작가가 눈을 떠보니, 파티에 함께했던 그 많던 사람들은 온데 간 데도 없다. 어지럽게 늘어선 술병이며 간밤의 향락적인 파티의 흔적만이 어지럽게 남아있을 뿐이다. 지인의 집을 나온 사진작가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간다. 스튜디오는 누군가의 침입으로 이미 엉망으로 어지럽혀져 있고, 벽에 걸어놓은 사진들도 그 누군가가 다 떼어갔다. 원본 필름마저도 없어진 것을 확인한 사진작가는 망연자실해 있다.

살인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물들이 모두 깨끗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시체가 누워있던 공원의 그 자리를 또다시 찾아간다. 어젯밤에 분명히 봤던 그 자리에 지금은 시체가 없다. 시체도 누군가가 치워버린 것이다. 이제는 경찰에 신고해봐야 아무런 증거자료가 없는 것이다. 허탈한 심정으로 공원을 내려오는데, 공원 안 테니스장에서 영화 시작할 때 등장했던 한 무리의 팬터마임 하는 사람들과 만난다.

팬터마임 하는 사람들은 테니스장안팎에 모여 있다. 안에서는 남녀 두 사람이 테니스를 치고, 테니스장 밖에서는 사람들이 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여자는 있지도 않은 공과 라켓을 들고 힘껏 테니스를 친다. 허공으로 공이 날아가고, 상대방 남자는 빈손에 라켓을 들어 허공에서 떨어지는 공을 되받아치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격렬한 테니스 경기가 라켓도, 공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행위로 힘차게 이뤄지고 있다.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공의 움직임을 따라서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간다.

그들 모두가 허상을 실제인 것처럼 보면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사진작가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그때다. 공이 울타리를 벗어나서 그가 구경하고 서 있는 자리 뒤로 떨어진다. 공을 친 여자가 눈짓을 한다. 떨어진 공을 울타리 안으로 던져달라는 눈빛이다. 사진작가는 잔디밭에 실제로 아무 것도 없지만 마치 공이 있는 것처럼 주워서 그 여자를 향해 힘껏 던져준다. 여자는 기쁘게 공을 받는다.

울타리 안에 있는 남자와 여자는 다시 테니스경기를 진행한다. 사진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무엇인가 깨닫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실상이고 어디까지가 허상인가? 성경은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영적인 실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세상만을 인정하고 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사진작가가 발견한 살인사건은 보이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런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사람의 생각이나 의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어떤 악의적인 영향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이 어찌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 카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첫 번째 살인 사건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온 영적인 문제였다.

예수님은 생각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을 저지른 것과 같다고 규정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역까지도 꿰뚫어보신 것이다. 사진작가는 어쩌면 그런 양면의 세계를 순간적으로 직시했는지도 모른다. 팬터마임 하는 사람들이 표현하는 허구적인 행위 속에서 사진작가는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죽음의 배후를 동시에 관조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일과 사진을 매개체로 하여 나타나게 된 허구적인 사건을 결국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묻어두는 것으로 끝을 내고 있다.

우리의 삶이 보이는 세계에만 국한시킨다면 우리는 결코 죽음의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세계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밝혀준다. 그리고 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길을 제시한다. 이 영화처럼 의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복음을 깨달아 삶과 죽음에 관한 확실한 답을 발견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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