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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너 스크랩 8회
작성자 : 이제호(galaxy5909)
등록일 :
분   류 : 수필/소설
조   회 : 448
스크랩 : 8

 

 

(영화)프리즈너

 

이웃집에 은밀하고 사악한 일을 꾸미고 있는 노파가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가 많은 범죄를 실행해 왔는데, 이제 다음차례로 당신의 자녀를 납치할 계획을 품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닥친 불행한 상황은 우리 인생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나의 이웃이 적이 되고,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적이 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는 것이 이 마지막 시대의 상황이다.

가까운 이웃이 어울려 식사를 함께 했던 어느 비 오는 날의 일이다. 두 가족의 애지중지하는 딸 둘이 갑자기 실종되고 만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두 어린 소녀는 증발해 버렸다. 남은 가족들은 혈안이 되어 실종된 두 딸을 찾는다.

의심할만한 캠핑카가 마을에 서 있었던 것을 기억한 실종 소녀의 오빠 증언에 캠핑카는 수배되고, 마을 가까운 지방도로 주변에서 의문의 캠핑카는 경찰들에 의해 포위된다. 캠핑카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경찰이 다가오자 운전자는 갑자기 차를 거칠게 몰아 나무에 들이박고는 사라진다. 그 운전자는 이웃집에 사는 점잖은 노파와 동거하는 오래전에 유괴된 아이였다.

 

결국 경찰에 의해 그 운전자는 체포되고 용의자로 조사를 받게 된다. 가장 유력한 사건의 키를 쥔 사람인 것을 실종된 딸의 아버지는 직감한다. 하지만 그 청년은 입을 열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는 충분히 의심이 가는 이 청년을 납치 감금한다. 그리고 오직 그 청년의 무겁게 닫혀있는 입을 열기 위해 폭행과 고문도 불사한다.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어떻게든 딸을 찾고 싶어 한 것이다. 그러나 청년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 청년이 감추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가 감금되어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침묵으로 지키려 했던 공포는 무엇인가? 그 청년은 공포심에 짓눌려 무엇인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청년의 배후에는 그 청년의 삶을 거머쥔 듯한 주권자가 있다. 바로 노파이다. 노파는 그 청년의 어린 시절에 그 청년을 납치했고, 마치 자식처럼 키웠다. 그런데 노파의 가정은 평범한 가정이 아니었다. 노파의 남편은 뱀을 키우고 성질이 아주 괴팍한 자였다. 그 노파의 진짜 아들 역시 이런 아버지의 괴팍한 성품을 닮아서 역시 뱀을 키우면서 이상하게 아버지가 좋아한 미로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다.

노파의 가정은 이미 사탄마귀의 지배아래 완전히 사로잡힌 끔찍한 가정인 것이다. 그런 가정에 납치된 아기가 그들의 자녀처럼 자라나게 되었으니 온전한 정신일 수가 없다. 그 청년은 노파의 범죄를 감춰주기 위해 폭력과 모진 고문에도 견디고 있는 것이다.

 

청년을 납치하고 감금한 뒤에 수시로 고문을 하고 있는 소녀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기독교인이다. 그런 그가 이처럼 악한 상황에 직면하자 괴물처럼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용서와 사랑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상황이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현실의 악과 어떻게 직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안겨주는 대목이다.

영화에서는 주기도문을 외우는 소녀 아버지의 음성을 두 번이나 들려준다. 첫 번째는 영화 처음 도입부에서 아들이 사슴을 향해 총구를 겨눌 때에 들려주고 주기도문이 끝나자, 아들은 방아쇠를 당겨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슴을 쏴서 죽인다.

두 번째의 음성은 청년을 모질게 고문하면서 양심에 가책이 되어 고통스러워 할 때였다. 주기도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오며...”

소녀의 아버지는 용서라는 단어 앞에서 더 이상 외우지 못하고 계속 용서란 단어를 넘어서지 못하는 음성을 들려준다. 지금 그는 청년을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혹독한 현실의 삶 속에서 어떤 악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 기독교인이 된 신실한 우리 모두는 어떻게 그 악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 되물어 볼 일이다.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삶에 적용해야 마땅하리라. 우리는 연약하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임으로 우리 자신의 관용과 용기로 죄인을 용서할 수 없다.

 

사람은 모두가 죄인으로 타고나기 때문에 죄인을 용서할 만큼 사랑이 깊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봤다. 십자가에 처형당하면서 끝까지 고통을 감내한 그 사랑에 빚을 진 자임을 깨닫고 있다. 그럼으로 기독교인이라면 그가 진실로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신 성령 충만한 성도라면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가르침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실한 기독교인의 삶이다.

그러나 기가 막힌 현실과 분노를 일으키는 범죄현장에서 소녀의 아버지는 비정한 악인이 되어 기독교인의 본분을 망각한 채, 감정에 휘둘려 또 다른 범죄에 가담하고 마는 것이다. 똑같이 가담한 다른 소녀의 아버지도 기독교인의 양심에 견딜 수 없어 하면서도 그 아버지의 모든 범행을 묵인하고 있어왔다.

다행히도 이웃집 소녀들은 살아서 돌아온다. 노파는 그 아이들을 납치는 했으나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다. 노파는 이런 얘기를 한다.

난 하나님과 전쟁 중이다.”

노파는 어떤 정신적인 이유로 믿음을 저버리고 악인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분명히 노파는 신실한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사탄마귀의 지배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한 채, 성격파탄자가 되어 하나님과 전쟁을 하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사탄마귀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런 반역을 꾀한 존재이다.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인 천사였고 많은 능력을 소유한 천사장이었다. 그런 그의 아름다움과 권능이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교만과 탐욕으로 변질된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 일로 인해 가장 아름다웠던 존재가 가장 추한 사탄마귀로 추락하고 만다.

이 사탄마귀는 첫 번째 아담인 사람에게 원죄라는 본질적인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 되었다. 그 사건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죄를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죄를 일으킨 것은 사탄마귀다. 자신의 타락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추방을 그대로 사람에게 전가한 것이다. 이 일은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이다.

지금 노파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게 하고, 납치와 살인을 서슴지 않는 악인의 길로 가게 된 그녀는 사탄마귀의 지배 아래 자신의 영혼을 내맡겼기 때문이다. 진실한 기독교인이었다면 이런 사탄마귀의 유혹과 지배를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어야 한다. 진실한 기독교인에게는 반드시 그의 삶을 지켜주는 보혜사 성령이 있게 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남긴 언약의 말씀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한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확증해 보이신 것이다. 복음은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성취의 증거를 증인들의 입을 통해 듣고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사랑이 급격히 식어지는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을 지키면서 사탄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얻기는 대단히 힘든 일이다. 노파는 바로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이 땅에서도 지키면서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비록 노파는 사탄마귀에게 져서 악인의 길로 가고 말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랑과 용서를 잃지 않고 행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딸은 가정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두 딸을 청년을 시켜 납치하고, 그런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전쟁을 치르려 했던 노파는 비참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예수를 판 가롯 유다를 보며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 신실한 기독교인은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용서를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탄마귀는 사람의 연약한 마음을 이용해서 노파와 같은 괴물을 만들어 버리는 일을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행하고 있다. 동성연애자로 만들고, 파렴치한 강간범으로 만드는 일 등등 헤아릴 수 없는 흉악한 범죄들이 마지막 시대에 편만해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우리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도 이런 폭력과 악한 삶에서 자신을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지켜내야 한다. 악한 사탄마귀의 폭력 앞에서 같은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과 그 용서의 마음으로 사탄마귀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은 사탄마귀이다. 그러나 사탄마귀는 이미 전쟁에서 참패하리란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사탄마귀의 종말이 명확히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파는 사탄마귀의 전략에 넘어가서 그 마귀의 종이 되어 하나님과 전쟁을 치루게 되었다. 이 땅에 모든 범죄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사탄마귀의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신실한 기독교인은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만이 사탄마귀의 일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참된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의 사랑과 그 놀라운 용서를 알고 있다. 이제 영화 속의 주인공들 가족처럼 내가 실제 삶에서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우리의 선택한 오직 하나이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범죄와의 전쟁을 멈추고 범죄를 일으킨 사탄마귀의 종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대적인 사탄마귀를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믿고 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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