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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눈으로 말하다7-두 가지의 교회 스크랩 0회
작성자 : 이제호(galaxy5909)
등록일 :
분   류 : 수필/소설
조   회 :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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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의 교회

 

이 세상에는 수많은 교인들이 있다. 여기서 교인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신앙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말한다. 교인들은 매주 일요일 보통 11시쯤 시작하는 예배에 참석한다. 주일 외에도 교회마다 주중 예배 시간이 있다. 수요예배, 금요예배나 토요일 예배가 있어, 그 모든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매우 착실한 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교인들 가운데 성도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일반 교인들 가운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써 날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 충만을 누리는 교인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교인과 교인들 가운데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여기 두 가지의 교회가 있다. 갑이라는 교회는 목사, 부목사, 전도사, 수십 명의 장로를 세운 비교적 조직을 잘 갖춘 교회다. 반면에 을이라는 교회는 목사, 집사 몇 명이 있는 작은 규모의 교회다. 이 교회는 미조직 교회로써 장로를 아직 세우지 못했다.

 

갑이란 교회는 예배당과 교육관을 따로 갖춘 독립된 건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을이란 교회는 상가건물 삼층에 있고, 바로 아래층은 노래하면서 술을 마시는 가요주점이 들어와 있다. 을이란 교회에서 수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아래층에서 유행가요 반주 소리와 사람들이 목청껏 세상을 찬양하는 소리가 교회바닥을 관통해서 들려온다. 삼층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이 들리고 교회 바닥에서는 쿵쿵거리는 드럼 소리와 술 취한 사람들의 악을 쓰는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독립된 건물을 갖춘 갑이라는 교회에서는 쾌적한 환경 속에서 그 어떤 세상의 소리에도 방해 받지 않은 채,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배당은 환한 조명으로 구둣가게 진열장처럼 밝고 화사하다. 찬양대에서는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맑고 아름다운 찬양이 흘러나온다.

을이라는 교회에는 수요예배 때, 목사님이 강단에 서 있고, 예배석에는 한 두 사람이 앉아서 예배를 보고 있다. 그러나 갑이라는 교회에는 칠이 잘 되어 반들거리는 예배석에 수백 명이 앉아서 강단에 선 목사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다.

 

외형적인 모습으로 본다면 누구나 을이란 교회 보다는 갑이란 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있는 교회로 보일 것이다. 갑이란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이 듬뿍 내려져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고, 조직을 잘 갖출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을이란 교회는 부흥도 안 되고, 환경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보아서 담임목사에게 분명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담임목사가 얼마나 변변치 못하면 교회가 이 모양일까. 이렇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을이라는 교회의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목사님의 말씀은 참된 복음의 말씀이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 목사님은 오직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시간 갑이라는 교회에서는 좀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사님은 올바른 삶의 태도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라고도 말한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얘기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고도 말한다. 우리는 노력해서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강론한다.

 

을이라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갑이라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세상의 진리를 교인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중이다. 교회의 외형적인 모습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울려 퍼지는 곳은 갑이 아닌 을이라는 작은 교회에서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은총이 부어지고 있는 현장은 을이라는 강단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면 그 자리에는 하나님의 임재도 분명히 함께 한다. 성령님이 친히 그 장소를 축복하고, 성령 충만하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반면에 갑이라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세상의 진리나 지혜나 지식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사탄의 임재가 가득한 곳이 되고 말 것이다. 사탄의 진리가 선포되는 곳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서 축복하고, 성령 충만하게 은혜를 베풀 까닭이 없다. 세상의 진리가 선포되는 강단에 선 담임목사님은 사탄의 종인 것이다. 그 분은 지금 사탄의 회당에서 사탄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강단에서 어떤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교회와 사탄이 지배하는 회당이 구분되어진다. 이런 식의 양분법이 듣기 매우 불편하겠지만 참된 교회는 반드시 주의 종인 담임목사님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와야 한다. 참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교회가 외형적으로 얼마나 경건한 모양을 갖췄건, 교인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건 상관없이 사탄의 회당인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갑이란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흥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지금의 모습처럼 보기 좋은 교회가 된 것이다. 일단 을이라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몇 안 되는 교인들은 분명히 성도들일 것이다. 이것은 확률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에 입각해서 예측한 것이다.

그러면 갑이라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저 다수의 교인들은 어떨까. 불행하게도 대다수가 교인일 것이고 그 가운데 몇 명이 성도일 것이다. 을이란 교회는 교인의 수가 아주 적은 데도 교인들 대다수가 성도인 반면에 갑이란 교회는 교인의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도의 수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것이다.

 

갑이라는 교회는 장엄하고 조직적이며 경건한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도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고 있지 못한 이유로 저렇듯 구원받은 성도들의 숫자가 적은 것이다. 우리가 외형적인 것을 보고 교회를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교회는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강단에서 외치는 주의 종인 목사님이 성경의 말씀과 복음의 진리를 올바르게 전달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갑이라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참 복음을 알리고 있지 않다면 그분 자신이 성도가 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소경이 소경들을 인도하는 격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인 되어 있지 않다.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임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며, 그런 확실한 믿음이 없기에 그의 마음 안에 성령님이 들어와 있지 않은 것이다.

성령님이 마음에 들어와 있지 않은 목자는 양떼를 기르거나 먹일 수가 없다. 그에게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샘처럼 솟아나야 양떼를 먹일 수 있는 것이며, 양떼를 안전하게 구원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샘처럼 솟아나는 성령 충만한 사람만이 참 목자가 되며, 그는 교인들을 모두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갑이란 교회의 목자인 담임목사님은 지금 어떤 신분인가. 그는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부목사나 전도사가 혹시 바른 믿음을 지닌 주의 종일 경우에는 분명히 담임 목사님과 마찰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면 교회에서 어떤 좋은 대우를 받든지 상관없이 그 교회에 오래 남아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생계문제로 인해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계속 좋아지도록 타협하게 된다면, 교회 안에 그대로 안주하게 되면서 점차로 자신의 믿음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또한 장로의 직분을 가진 교인들 간에도 믿음의 방향이 참된 복음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기에, 끊임없는 마찰과 잦은 싸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참된 복음의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맹이가 없는 조직이 되어 분열과 갈등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열과 갈등 속에서 묵묵히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소수의 교인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이 결국 사탄의 회당이 돼 버린 교회 안에서도 가까스로 살아남아 성도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카톨릭 교회 안에도 이런 교인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과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분열과 갈등이 있을 때, 절대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특히 분열을 일으킨 주동 세력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 반대 세력에도 비록 관여하고는 있지만 분열을 책동하지 않고, 모든 것을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고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렇듯 주님께 믿고 의지하며, 주님과 상의하는 믿음 있는 태도를 통해 그들이 구원받은 성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사탄의 회당이 되 버린 교회, 경건의 모양만 갖춘 교회 안에서도 진실 된 신앙인은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다. 교인과 성도의 구별은 그 사람 안에 예수가 그리스도 되어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분명히 성령이 그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어 있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된 사람에겐 반드시 성령이 들어와 함께 하신다. 성령의 인도와 성령 충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을이라는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는 참 교회이건, 사탄의 회당이 되 버린 갑이란 교회이건, 개인의 마음속에 예수가 그리스도로 주인 되어 있다면 그는 어떤 교회에 출석하든 상관없이 구원받은 성도인 것이다. 내가 교인인지 성도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가 참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곳인지 아닌지로 내가 구원받은 성도임을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신뢰하고 있는지, 또한 내 자신이 죄의 습관과 유혹 앞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도와 말씀과 전도를 통해 얻고 있는가의 여부다.

특히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은 기도를 통해서 얻어진다. 죄를 이기고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간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면, 그는 분명 성도로써 지금 죄악 된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충만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의 세상에서 살면서 더더욱 사탄의 회당이 되 버린 교회에서 성도의 신앙생활을 지켜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모든 어려움을 그분께 상고하고, 그분이 주시는 은혜로 자신의 믿음을 지켜갈 수 있다.

 

갑이라는 교회나 을이라는 교회가 교인을 성도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오히려 내 자신이며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그분께 순종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의 은혜를 구하고 있다면 그의 신앙은 구원받은 성도의 믿음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두 사람 이상 모여서 함께 예배할 장소인 교회당은 오늘날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교회당이 외형적인 성장만을 지향한다면, 그 교회당은 자칫 사탄의 회당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사탄은 외적인 성장과 교세를 확장하려는 교인들의 의욕 뒤에, 이빨과 발톱을 숨긴 채 도사리고 있다가, 짐짓 교인들의 마음을 교만과 위선으로 삼켜버리는 것이다.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출발한 탐욕스런 마음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다.

을이라는 교회가 저렇듯 가난하고 미조직인 채로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다. 그 교회에서 참된 복음의 말씀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언젠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조직화된 교회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을이란 교회가 조직을 잘 갖추고 환경이 좋아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만이 아니라 사탄의 시험과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을이란 교회의 성장과 조직화의 과정 안에는 교인들과 성도들이 함께 뒤섞여 그 일의 진행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성도가 아닌 교인들에 의해서 을이란 교회도 갑이라는 교회처럼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다.

교인들은 아직 자신의 믿음을 올바르게 지킬 성령 충만한 힘이 없기에, 어떤 문제가 교회 안에서 생겼을 때, 갈대처럼 이리저리로 흔들릴 수 있다. 그럴 경우에 사탄은 여지없이 이 문제를 분열과 혼란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사탄에게 빌미를 주는 이런 문제는 교회가 성장하면 할수록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담임목사님과 사역자들과 중직자들이 항상 성령 충만을 간구하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탄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저주로 열매를 맺게 된 것인가. 아니다. 교인들이 여전히 나를 주인자리에 앉혀놓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여전히 세상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강단에서 오직 복음,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철저히 순종하는 길만이 교인에서 성도로 변화되어 영원히 구원받게 되는 길이다.

또한 목사님이 오직 복음으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결론이 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된다. 그런 성도와 목사님이 있는 교회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교회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면류관을 얻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부디 모든 교회가 하나님이 머리되시고, 주인 되신 교회가 되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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