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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울자나의 습격 스크랩 7회
작성자 : 이제호(galaxy5909)
등록일 :
분   류 : 수필/소설
조   회 : 410
스크랩 : 7

울자나의 습격

 

아파치 족의 지도자인 울자나가 인디언보호 구역을 탈출했다. 울자나의 지시 아래 몇 명의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도망친 것이다. 이들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보호구역 외곽을 돌아다니면서 백인 정착촌을 찾아가서 살육하고 재물을 탈취할 것이 분명했다.

이들을 붙잡기 위한 기병대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그 기병대의 지휘관 역할은 신임 발령 받은 지 육 개월 밖에 안 되는 가네트 데뷘 소위로 목사의 아들이다. 경험이 부족한 지휘관을 도와서 기병대의 선두에 서게 될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백인으로 인디언 여자와 함께 살면서 인디언에 대한 생리와 관습을 잘 아는 기병 출신의 서부사나이 맥킨토시(버트랭카스터).

또 한 사람은 인디언 케니테이다. 그는 그 지역의 지리에 밝으며 울자나와 다른 인디언들에 대해 정보가 밝은 자다. 데뷘 소위를 돕는 맥킨토시나 케니테이는 기병대와 계약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사건 해결사로써 기병대를 돕도록 임무를 지고 있다. 케니테이는 인디언이지만 기꺼이 백인기병대의 일을 돕는다.

울자나와 그 일행들은 예상했던 그대로 백인 정착촌을 습격하여 가옥을 불태우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거나 내장을 꺼집어 내는 등의 야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을 마치 하나의 가축으로 취급한다. 도피를 위해 필요한 물품이나 식량, 말을 빼앗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하려는 듯이 사람을 도륙하여 전시물처럼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이런 잔혹한 행위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들은 자연만물에 혼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어린이를 죽이지 않고 성인남자만을 죽인다. 성인남자를 죽이면 그 사람의 혼이 육체를 떠나 자신들의 혼에 깃들어 와서 혼적인 힘을 더해준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강해 보이는 상대를 죽이려 한다. 그래야만 자기 보다 더 강한 혼이 깃들어 자신의 혼적인 힘을 강화시켜 준다는 믿음이다.

데뷘 소위는 이들의 잔혹한 행위를 보면서 성경의 구절을 떠올리며 질문한다.

저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잔인할 수 있습니까.”

기병대의 추적은 집요하게 계속되고 앞서 간 울자나의 무리들이 정착촌마다 만행을 저지르고 도망간 흔적을 보면서 백인기병대들은 치를 떨고 있다. 그러다가 무리에서 이탈한 한 인디언을 죽이게 된다. 백인기병대원들은 그 사체를 두고 내장을 꺼집어내려는 시도를 한다. 인디언들이 했던 행동을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그대로 모방하려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도인 데뷘 소위는 대원들의 행동을 막는다.

그 시체를 손대지 말고 그냥 묻어줘라!”

대원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마지못해 따른다. 맥킨토시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데뷘 소위에게 비아냥거리듯 말한다.

백인들도 인디언처럼 잔인해 질수 있다는 것이 혼란스러운가.”

성경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이 분명히 있다. 예수님은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그 눈을 빼버리라.”라고도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것은 죄에 대해서 강경하게 대처하기 위한 표현인 것이다. 육체의 일부분을 잃는 것이 혼과 영에 깊은 죄악을 심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는 은유적인 표현인 것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이 표현을 빌어서 복수의 의미로 사용한다. 그들은 성경을 왜곡시켜서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심지어는 천국에 가서 받게 될 세속적인 보상을 위해 폭탄테러도 불사한다. 기독교인을 많이 살해하면 할수록 천국에 가서 여러 명의 아내와 결혼하고 온갖 부와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보상의 믿음을 갖고 있다. 울자나와 그 일행들이 벌이는 만행은 자연만물에 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만일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복음을 알게 된다면 자연만물에 혼을 불어넣은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불멸의 영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성경을 왜곡하고 변질시킨 교리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교도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면 그들에게 잘못 각인된 신앙을 버리고 복음을 깨달아 믿기는 그만큼 어려울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악하기 때문에 백인이나 인디언이나 모두 악한 짓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노아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할 뿐임으로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소돔과 고모라 성읍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멸망이 일어난 것도 소돔과 고모라 성읍 안에 열 명의 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성읍에 단지 열 명의 의로운 자가 없어 전체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홍수로 멸망한 노아시대에는 노아와 일곱 명의 가족만이 의인으로 구원받았다. 노아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의인을 보겠느냐고 오히려 묻고 계신다. 실로 두려운 말씀이시다. 이런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한 우리들인데, 우리는 여전히 태평하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노아의 때처럼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매매하고그렇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문제,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도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인디언들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백인의 사체를 훼손한다. 소나 양을 잡듯이 잡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명에 대한, 특히 인간의 특별함에 대한 복음적 이해가 되어 진다면, 가축처럼 인간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사악한 행위인지 회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 데뷘 소위처럼 사체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사람을 향한 생명의 존엄성과 사람이 어떻게 다른 동식물과 구분이 되는 영적인 존재인지 구별해야 한다. 복음만이 이 사실을 납득시키고 증명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창조된 사람은 동식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허락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신분과 권세인 것이다. 이런 특별한 영적인 존재이기에 사람을 살인해서도 안 되고, 가축이나 다른 동물처럼 함부로 취급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마침내 백인기병대는 울자나와 그 무리를 바짝 뒤쫓게 된다. 맥킨토시와 케니테이가 기지를 발휘하고 그들 무리의 향방을 잘 알고 미리 선수를 쳤다. 궁지에 몰린 울자나와 그 일행들은 마침내 어느 골짜기에서 기병대와 접전을 벌인다. 총격이 오가고 맥킨토시도 총상을 입게 된다. 케니테이는 울자나를 추적하여 마침내 그와 마주친다.

케니테이가 울자나에게 아들이 총격을 받아 죽게 된 사실을 알려준다. 울자나는 아들의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총을 버리고 아들의 혼을 기리는 제의적인 행동을 한다. 케니테이는 이런 울자나를 보다가 방아쇠를 당긴다.

울자나가 아들의 죽음 소식에 전의를 상실하고 케니테이에게 마치 목숨을 내맡긴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 아들은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실 때,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하고 아버지께 호소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결코 버리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자신이 육체로 오셔서 그 고통을 동일한 심정으로 겪고 있었으니 말이다.

울자나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저 무릎을 꿇고 죽은 아들을 슬퍼하며 의식을 치루는 행위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다. 자식의 고생을 대신 짊어질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 역시 그런 분이시다. 그분은 인류 전체의 죄 짐을 짊어지셨다.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으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 문제, 죽음의 문제를 다 이루었다!”라는 한 마디 말씀으로 완성하셨다.

 

울자나의 시신을 말에 싣고 케니테이가 왔을 때, 데뷘 소위가 이끄는 기병대도 격전지로 돌아왔다. 기병대는 두 팀으로 갈라져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맥킨토시가 이끌던 팀은 전멸했다. 이제 맥킨토시만이 총상을 입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이다. 데뷘 소위는 맥킨토시를 데리고 가려한다. 하지만 맥킨토시는 기병대의 짐이 되길 원치 않았다. 가다가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아들로써 데뷘 대위가 맥킨토시의 소천을 위해 구원의 기도를 해줘야 할 마지막 시간이 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데뷘 소위는 같이 데리고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할뿐이고 그가 담배를 말아 피우도록 도와줄 뿐이다. 데뷘 소위가 맥킨토시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할 최후의 순간인데, 맥킨토시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구원의 복음은 이렇듯 목사의 아들이라서, 내가 기독교인이라서, 내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데뷘 소위도 자신 안에 구원의 복음이 없는 사람인 것이 드러난 것이다. 만일 데뷘 소위에게 성령이 함께 하셨다면 맥킨토시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하면서 그의 소천을 도왔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주셔서 나의 모든 죄를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해주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합니다. 나의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죽어가는 맥킨토시가 데뷘 소위와 함께 이렇게 나지막한 소리로 같이 기도하고 신앙고백을 했다면 그는 반드시 소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편안히 갔을 것이다. 데뷘 소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렇게 서부의 사나이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맥킨토시가 담배를 겨우 빨아 당기면서 회한의 연기를 내뿜다가 호흡이 멎어 죽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올바른 전도자를 만나 구원의 참 복음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증명하는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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